Classical Music(입문)

무도회의 권유/칼 마리아 폰 베버

몬티셀로 2022. 9. 1. 11:15

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는 독일 홀스타인 주 오이틴에서 가극단 단장이던 프란츠 안톤 베버의 맏아들로 태어냈습니다. 어머니는 비엔나 출신의 가수였습니다. 부모의 직업상 공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함부르크, 짤즈부르크, 프라이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비엔나 등 각지를 떠돌면서 자랐습니다.  부모가 모두 음악가였으므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고 아버지로부터 기초적인 음악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성을 보여서 각지의 당대 유명한 음악가들로부터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흔히 부르는 짤즈부르크의 요제프 하이든의 동생인 미하일 하이든도 베버를 가르친 스승의 한 명이었습니다.

 

12세에 결핵으로 어머니를 잃고 몇달 후 여동생도 병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을 접하며 일찍 철이 들고 사색적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하여 14세에 작곡한  오페라 <숲의 소녀>는 무대에 올려져 성공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18살 때 브레슬라우 오페라극장의 악장이 되었지만  2년 만에 그 자리를 그만두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지휘도 하고 작곡도 계속했습니다. 27살이 되던 1813년 때 프라하의 오페라 극장 지휘자가 되어 정착 생활을 시작했으나 4년 후인 1817년 독일 드레스덴 궁정악단의 지휘자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태리 오페라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베버는 독일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음악보다는 민중들의 음악과 토속적인 민요 등에 더 관심이 많았고 토속적인 독일 오페라의 중흥을 위해 활발한 창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해에 베버는 그의 오페라 <실바나>의 주연이었던 가수 카롤리네 브란트(Caroline Brandt)와 결혼하였습니다. 1820년에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완성하여 이듬해인 1821 6, 베를린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서 약 2 6개월 동안 50회나 공연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며 베버의 명성을 외국에까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17년 결혼 후 몇년간이 베버에게는 개인적으로나 또 음악가로나 가장 행복했던 전성기였습니다. 결혼 후 2년 후인1819 7 28, 아내의 생일을 맞아 선물로 피아노 곡을 하나 작곡하여 헌정하였는데 그 곡이 지금은 <무도회의 권유>로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이 곡은 론도 형식의 피아노 곡이라  베버는 이 곡에 "화려한 론도"란 제목을 붙였지만 <Aufforderung Zum Tanz(Invitation to the Dance) Op.65>란 곡명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 곡은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 소개된 관계로 일본어 제목인 舞踏への勸誘(부토우에노칸유)를 우리말로 단어를 조사까지 일대일 번역하면서  우리말 제목이 <무도에의 권유>가 되었는데, 아마도 세간에서 <무도회의 권유>로 변형되어 유통되다가 그것이 굳어진 것 같습니다. <무도회의 권유>는 자칫하면 무도회에 가보라는 권유로 새겨질 수 있어서 적당한 제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도회에서 자주 있을 수 있는 정경을 묘사한 곡이라 굳이 무도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제목을 정하라면 <무도회 정경> 정도가 무난할 것 같습니다.

 

베버는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 곡의 내용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1) 무도회장입니다. 젊은 아가씨에게 한 신사가 다가가서 춤 한 곡을 추자고 신청을 합니다만 수줍은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거절합니다. 하지만 신사는 정중하고 은근하게 다시 춤을 같이 출 것을 요청을 합니다.  망설이던 그녀는 승락을 하고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누며 새 곡이 시작되기를 기다립니다. 이윽고 연주되던 춤곡이 끝나자 신사는 아가씨를 인도하여 플로어에 나가서  새 곡의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립니다.  2) 화려한 춤곡이 흐르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신명나게 함께 춤을 춥니다. 3) 곡이 끝나고 두 사람은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베버는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을 피아노로 묘사하며 남성의 대화 부분은 저음으로 여성 부분은 고음을 사용했습니다. 이 곡은 1841년 프랑스의 작곡가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가 아름다운 관현악곡으로 편곡하여 한층 더 유명해졌는데 베를리오즈는 남성의 대화는 첼로로, 그리고 여성의 대화는 클라리넷으로 표현했습니다. 대화 장면에 이어서 화려하고 빠른(Alegro Vivace) 왈츠곡이 시작됩니다. 이 때문에 이 곡을 때때로 "Invitation to the Waltz"로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곡의 뒤에는 애잔한 사연이 있습니다. 베버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좌골의 발달 장애로 4세가 될 때까지 잘 걷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후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다리를 절었습니다. 결혼 전에 그는 젊은 궁정악단장으로서 무도회 음악을 담당하며 무도회에 많이 참석할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신명나는 음악이 가득히 흐르고 선남선녀들이 모여서 흥겹게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저는 다리를 원망하지 않았을까요? 결혼 후 하루는 아내와 함께 무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나는 불편한 다리로 절뚝거리며 춤을 추기 싫소. 혹시 누군가 당신에게 춤을 추자고 하면 나는 신경쓰지 말고 기꺼이 춤을 추시오.”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결혼 후 9년만에 베버는 39세의 나이로 공연 관계로 방문했던 런던에서 건강이 악화되어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후에 천국에서 더이상 다리를 절지 않는 몸이 되어 아내를 다시 만났을 때, 베버가 그녀에게 Sollen wir tanzen(Shall we dance)?라고 춤을 한 곡 청하여 그의 곡 화려한 론도(무도회 정경)”에 맞추어 한바탕 신명나게 춤을 추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