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한 서커스단에서 줄타기와 마상 곡예를 하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서커스단이 스웨덴에서 공연을 하는 동안 운명적으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남자는 귀족 출신의 스웨덴 경기병 연대의 장교였습니다.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 사랑이 흔히 말하는 금지된 사랑이었습니다. 삼십대 중반의 남자에게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안타깝게도 그대로 헤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덴마크와 스웨덴으로 나뉘어 살면서도 계속적으로 서신을 주고 받았습니다.
군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남자는 아가씨를 그리워하다가 결국 탈영하여 덴마크로 그녀를 찾아가고...... 두 사람은 고달픈 사랑의 도피행각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의 군 동료가 스웨덴에서 그를 찾으러 옵니다. “그녀가 너를 망치고 있다”고 제발 정신 차리고 돌아가자고 애원하는 친구 앞에서 남자는 "그녀가 없는 삶이란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며 자신을 그녀의 곁에 있도록 그냥 내버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탈영 장교인 남자와 의붓아버지의 서커스단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던, 비교적 유명했던 곡예사 아가씨의 일탈적인 사랑의 도피행각은 평탄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다니지만 계속적으로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자, 추적의 손길을 피하기 위하여 두 사람은 점점 더 사람들을 피하여 한갓진 곳들만 골라서 다니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진 돈이 거의 바닥나고, 두 사람은 끼니를 제대로 때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배가 고파서 클로버 잎을 따 먹거나 꽃을 따 먹기도 하는 연인을 바라보면서 남자의 가슴은 미어집니다. 사랑의 도피길이 고달플수록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더 깊어집니다.
결국 두 사람은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함께 세상을 뜨기로 결정합니다. 서로 상대방이 없는 이 생에서의 삶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두 사람은 세상이 그들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 이상 이제는 세상을 뜨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털어서 두 사람은 마지막 점심을 준비합니다. 들판의 한 나무 아래서 식사 후에 와인을 나누어 마시고 마지막 슬픈 포옹 끝에 남자가 총을 꺼내어 들고 품안의 사랑하는 연인을 쏘려고 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합니다. 모질지 못하여 마음 속의 사랑을 마음 속에만 간직할 수 없어서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나섰던 남자는 마지막 순간에도 역시 모질지 못합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나비 한 마리를 좇아서 흐드러진 들꽃 사이로 달려간 아가씨가 두 손으로 나비를 잡았다가 놓아주려고 손을 벌리는 찰라 총성이 한 발 울립니다. 그리고 연이어서 울리는 또 다른 한 발의 총성...... 1889년 7월 20일, 덴마크의 유원지 토싱에(Tåsinge) 섬의 북쪽 숲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한 짧은 동안이었습니다. 꿈결 같지만 매우 불안한 행복의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세상을 뜨고 이들을 발견한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알게되어 두 사람을 토싱에(Tåsinge) 섬의 공원 묘지에 함께 묻어주었습니다. 지금도 그들의 묘지에는 가여운 두 영혼의 슬픈 사랑을 기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 아가씨의 이름은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이었고 세상을 뜰 때의 나이가 21세였습니다. 본래 북부 독일 출생으로 본명은 하트비히 얀센(Hadvig Jensen)이었습니다. 서커스단원이었던 어머니가 마디간이란 성을 가진 미국인 서커스 매니저와 재혼하면서 새로 갖게 된 이름이 엘비라 마디간이었습니다. 당시 전 유럽을 뗘들썩하게 했던 이 애처로운 사랑의 이야기는 1967년 스웨덴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린 마음을 위로하듯 영화 전편에 틈틈이 부드럽게 흐르던 배경 음악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안단테입니다. 모차르트가 그의 영혼의 하늘 한 편의 실비단 하늘을 한 자락 끊어다가 오선지에 늘어놓은 것 같이 감미롭습니다. 이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하고 나서 이 피아노 콘체르토를 엘비라 마디간(Elvira Madigan) 콘체르토라고 많이들 부르고 있습니다[Mozart Piano Concerto No. 21 K.467 2nd 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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