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 플라이셔(Leon Fleisher)는 1928년 미국 태생으로 피아니스트겸 지휘자입니다. 동유럽에서 이민온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러시아계이고 어머니가 폴란드계입니다. 4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8세에 무대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16세에 뉴욕필과 협연을 하였던 천재입니다. 이때 뉴욕필의 지휘를 맡았던 피에르 벤자민 몽테는 "레옹 플라이셔를 발굴한 것은 20세기 피아노 계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며 극찬을 해 마지않았습니다.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쓰 피아노 콩쿨에서 1952년 미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 있습니다.
정상급 연주자로 각광받던 그에게 큰 시련이 닥쳐옵니다. 1964년, 그의 나이 36세 때 오른손 약지와 새끼가락의 근육들이 제멋대로 수축을 반복하며 뒤틀리는 운동장애(focal dystonia)가 발생하여 정상적인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는 피아니스트로서는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 일이었습니다. 2년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치료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 때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 자살을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절망의 나날 가운데 어느날 그의 머릿속에서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두 손으로 연주하는 정상급 연주자로 무대에 서는 것을 넘어서는 것’이란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릅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다른 방향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인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시간들을 늘리고, 지휘자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또 왼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을 모아서 연주하며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많은 작곡가들이 왼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을 써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무려 30년이 흐른 후인 1990년대 중반, 그의 나이 60대 중반에, 새롭게 개발된 보톡스 치료에 의해서 그의 오른손이 조금씩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피아니스트로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던 이 천재 피아니스트는 발병으로 연주를 중단한지 40년만인 2004년 "Two Hands"라는 타이틀을 가진 음반을 내며, 다시 두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음악 팬들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름진 왼손을, 40년만에 "이제는" 정상이 된 주름진 오른손에 포개어 찍은 음반 사진은 볼수록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40년간의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레온 플라이셔는 2007년 미국의 대중문화에 기여한 인물들에게 수여하는 Kennedy Center Honors를 수상하였으며, 2010년에는 영국의 Royal philharmonic Society로부터 올해의 연주자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레온 플라이셔의 연주 음반 “Two Hands”에서 두번째 곡인 <Sheep may safely graze(양들은 안전하게 풀을 듣을 수 있어라)>를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곡은 본래 모두 15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냥 칸타타 BWV208 중에서 9번째 곡(Schafe können sicher weiden)인 소프라노 독창곡을 독일의 피아니스트 Egon Petri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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